10월 08일 - 박마이클 목사의 기도편지

작성자
bride
작성일
2018-10-08 16:49
조회
3705











사랑하는 신부중보 기도 동역자님들께,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현 시대를 살고있는 크리스챤들 중에서 때를 알고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축복을 받은 성도들 입니다.

 

저는 모든 크리스챤들이 다 깨어서 시대를 알고 깨어서 주님 오심을 사모하며 기다리는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들도 깜깜한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 대부분인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눅 8:1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을 구별하여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도 적용이 되는 말씀으로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로 말 싸움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은 내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Bond-Servant 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인정하셔서 영의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믿어지고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정말로 주님께 감사할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한국의 상황은 불신자들도 나이들어 6.25 를 경험한 세대는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얼마나 사악하고 거짓 덩어리인지 잘 압니다.

하물며 크리스챤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비 진리인지 알려주십니다.

 

어제 설교 때 제가 나누었던 편지를 아래에 첨부합니다.

저의 고등학교 친구가 보내온 것인데

(옛날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주필이었다가 은퇴한 친구인데 크리스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월남 패망의 스토리가 지금과 똑 같이 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했던 언어와 지금 현 정부 밑에서 충성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신기하게도 너무 비슷합니다.

제발 정신들을 차리고 대한민국을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하겠습니다.

 

어쩌다가 지난 2년 동안에 이렇게 변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똑똑히 알고, 보고,

의로운 판단을 내려야 할때입니다.

내년 이 때쯤 어떻게 더 타락해 졌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멘, 주님 오시옵소서.

 

 

참,  어제 저희 교회에서 장로, 권사 임직 예배를 위해 기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로 잘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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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nd Maranatha

 

Pastor Michael Park

Bride Church/ Global Bride Ministries

Los Angeles, California
 






















越南의 惡夢



金가들의 赤化통일 꿈, 8부 능선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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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월남 패망의 1등 공신이었던 쭝딘쥬 역시 공산당에 의해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된다. 쭝딘쥬는 그곳에서 하루 100g 가량의
배급을 받으며 중조동에 시달리다가 1960년 중반에 사망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소모품으로 전락해 배신당한 통일운동가의 비참한
말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a2484f6-85fb-4f4e-8c21-716287e81eb6.jpg작금의
나라 꼬락서니를 40수년 전 越南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설마? 하면서도 그 惡夢이 점점 현실성을 더해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1975년 월남 공산화 때 駐越공사였던 李大鎔 육군 예비역 준장의 증언을 다시 찾아봤다. 작년 11월 별세한 李씨(92)는
월남 敗亡시 교민 구출에 진력하다 막상 자신은 탈출 못하고 越盟軍에 잡혀 5년간 감금당했던 인물이다. 생전에 "우리와 거리가 먼
독일 통일을 말하지 말라. 지금 우리는 월남과 똑같은 방법으로 망해가고 있다"던 그의 주장은 태극기부대의 정신무장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그의 마지막 증언을 재구성한 것..............................



“미국과 한국 등 연합국이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파병했다. 미국은 연 평균 500억 달러를 퍼부었고 54만 여명의 병력
가운데 56,000 여명의 전사자를 냈다. 20만 명이 부상당했다. 한국군도 연인원 33만 명을 파병했다. 5,000 여명이
전사했고, 5만 여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월남은 1975년 망했다. 천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처형되거나 재교육 캠프에 끌려가 서서히 죽어갔다. 106만 여명의 難民이 나라 없는 민족이 되어 파도에 목숨을 건 보트피플 신세가
됐다.



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정과 부패가 난무했고 종교지도자, 학생들은 연일 반정부
데모를 했다. 미국도 지쳤다. 1973년, 드디어 월맹이 제안한 ‘평화협정’에 속아 넘어갔다. 그리고 철수했다. 미군이 나간 2년
후 1975년 4월, 월남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총 앞에서 목숨을 구하는 자들의 아우성이 타이타닉호 침몰 순간처럼 처절했다.
스스로를 지킬 줄 모르는 국민이 당하는 최후였다. 하늘이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외면한 것이다.




5c4b1530-6db1-4068-bba8-f9cf1b47ee28.jpg월남
정부에는 간첩이 많았다. 간첩들은 민족주의자와 인도주의자로 위장했다.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인간이 공산주의 치하에서
죽고, 갇히고, 신음하고, 도망한 이후에야 알려졌다. 1967년 9월3일, 월남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11명의 입후보자가
난립했다. 티우가 당선 되었다. 차점으로 낙선한 야당 지도자 쭝딘쥬가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패망 후에 알려졌다. 그 간첩이 선거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시체는 쌓여 산을 이루고 있다. 우리 조상이 이처럼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월맹과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평화협상이 가능한데, 왜 북폭을 하여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가.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폭을 중지시키고 평화적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하겠다."




그의 말은 미국의 반전여론을 자극했다. 미국과 월맹이 파리에서
비밀 평화회담을 했다. 월남사회는 남남분단으로 치달았다. 여당은 강력한 반공정책을 표방하며 파리 평화회담에 반대했고 야당은
포용정책을 들고 나와 정부에 압력을 가하며 악착같이 데모를 주동했다. 월맹은 한쪽에선 평화회담으로, 다른 쪽에서는 대남공작으로
집요하게 공산화전략을 추구했다.



1973년 1월27일, 드디어 5년간 끌어오던 베트남전이 종식되었다. 키신저는 월맹에 40억 달러를 주고 평화협정서라는 종이
쪼가리를 샀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문서였다. 키신저는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등 4개국
250명의 휴전감시위원단을 만들어 휴전선을 감시했다. 월맹의 외무차관이 이끄는 150명의 고문단을 사이공에 인질로 받아 놓기까지
했다. 이것도 믿지 못해 미국은 영국, 소련, 프랑스, 중국 4개국 외무장관까지 서명에 참여시켰다. 월남과는 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월맹이 휴전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해공군력이 개입하여 북폭을 재개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미군이 보유하던 각종 최신 무기를 모두
월남에 주었다. 월남 공군력은 전 세계에서 4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철저한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키신저는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휴전체제가 최소한 10년은 갈 것이라고 낙관했다.




bfcee7cf-770d-465b-8cf2-b033dd1a58a0.jpg이로서
세계의 공기는 전쟁에서 평화로 옮겨갔다. 키신저와 월맹의 레둑토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레둑토는 "나는 한 일이
별로 없다. 나보다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 많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세계는 이를 ‘동양적 겸양의 표시’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그를
더욱 신뢰했다. 모두가 환상이었다. 그리고 쥐가 고양이를 잡아먹는 이변이 발생했다.



월맹은 미군의 북폭과 경제봉쇄로 전쟁수행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매년 80만-100만 톤의 식량부족,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휴전협정 이후 월남은 월맹보다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월등히 앞서 있었다. 그래서 월남 지도부와 국민들은 상황을 너무도 쉽게
낙관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의 하나 월맹군이 도발하더라도 즉시 미국의 해공군이 개입하여 북폭을 재개할 것이고 이후
월맹경제 원조도 중단하면 당시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월등한 월남군 기동력과 화력으로 월맹군의 공세에 맞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누구도 공산군이 남침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오랜 전쟁에 지친 국민들은 평화무드에 들 떠 있었다.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퍼져나가 공산군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져버렸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자 사이공에는 100여개의 애국단체, 통일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월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다. 목사, 승려, 학생 그리고 좌익인사들이 한데 섞여 반전운동, 인도주의운동, 문화운동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단체들을 동원하여 티우 정권 타도를 외치고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월등히 높은 경제력과 막강한 화력을 가졌던 월남부대가,
식량부족으로 고민하던 월맹군에게 허수아비처럼 붕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1975년 1월8일, 드디어 월맹군 18개 사단 총병력이 월남 공격에 투입되었다. 3월26일 다낭이 함락되고 월맹군이 사이공을
향해 무인지경으로 달렸다. 부패했던 군인들이 앞을 다투어 가족을 데리고 배와 비행기로 탈출했다. 남침 후 한 달이 지났지만 미국은
방위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6167a4b9-7f7e-4256-91ac-87640b5ca3f2.jpg4월30일
정오, 월맹 탱크부대가 독립궁을 점령했다. 5명의 월남 장군들이 자결하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으로 도망쳤다. 사이공 함락 후,
월남의 군인, 경찰은 수용소로 연행되었다. 공무원,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들은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되었다. 한 번
가면 이슬로 사라졌다.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던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인사들도 예외 없이 모조리 처형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 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층의 월남 국민들은 소형 선박을 이용해 목숨 건 탈출에 나섰다.
보트피플의 숫자는 약 106만 명. 이 중 바다에 빠져 죽거나 해적에게 살해당한 숫자가 11만 명이었고, 살아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은 95만 여명으로 집계 되었다.



월남은 힘으로 망한 게 아니라 속임수에 망하고, 간첩에 망하고, 극성맞은 데모에 망하고, 부정부패에 망했다. 내가 체포되기 전
사이공에서 직접 목격한 것이 있다. 월맹군인들은 소금만 가지고 하루 두 끼 식사를 했으며 속옷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군화를 신은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타이어를 잘라 발에다 끈으로 묶은 채, 질질 끌고 다니며 전투를 했던 것이다. 이런
군대가 최신무기로 무장한 월남군을 붕괴시킨 것이다. 부패한 군대, 분열된 사회가 최신 무기를 고철로 만든 것이다. 월남은
군사력으로 망한 게 아니라 이들 좌익 단체의 선전 선동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07f3977c-d7c7-44cf-a5e9-9068cad695f4.jpg모택동의
대륙 장악에 고무되어 6.25를 일으켰다가 美軍 참전으로 실패한 김일성은 호치민의 월남 통일에 “바로 이거다!” 다시 무릎을
쳤다. 그 김일성과 아들은 죽었지만 손자가 대를 이었다. 베트남의 정글, 아프가니스탄의 황야 같은 천연 요새가 없는 그들은 대신
핵무기를 만들어 놓고 지금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월남 패망 前夜 같은 상황을 거의 만들었고
이제 주한미군만 철수하면 다음은 뻔한 수순이다. 지금 그들 입에서 나오는 평화, 통일, 우리민족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면
등신 천치거나 동조세력이다.



일본은 한반도 有事시 1천만 명의 難民이 몰려올 걸 우려하고 있다. 660년 백제가 망했을 때 20만 명의 遺民이 도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 체결과 미군 철수는 설마의 경지를 넘어 이제 실제상황이 돼가고 있다. 한 번 떠난
美지상군의 재투입은 기대하기 어렵다. 金가들의 꿈이 8부 능선까지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들이 적화통일 고지의 정상에
이르기 전에 절벽 밑으로 밀어 버리는 게 우리들 몫 아닐까. (끝)